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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_히스토리에 답이 있다_배가 아픈 이유

공감과 위로
작성자
공감클리닉
작성일
2025-04-23 08:04
조회
188

 

히스토리에 답이 있다_배가 아픈 이유

 

살면서 가장 흔히 겪는 불편 중 하나가 배가 아픈것이다. 뭘 많이 먹고 체해서 배가 아프기도 하고 과음한 다음날 아침 빈 속에 명치끝이 더부룩하고 아프기도 하다. 아침에 오렌지를 먹으면 속이 쓰리고 아프기도 하고 우유나 치즈를 먹으면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기도 한다. 시험 보기 전날에는 반드시 배가 부글거리며 아랫배가 쥐어짜듯 아픈 사람도 있고 부부싸움 끝에 메스껍고 배꼽 주위가 아프기도 하는가 하면 사돈이 땅을 사도배가 아프다. 우리네 삶에는 배 아플 일이 참 많기도 하다.

배가 아픈 사람들은 보통 약국에서 배 아플 때 먹는약을 구해서 먹는다. 적지 않은 약사들도 쉽게 환자와 의기투합해서 약을 내준다. 오랫동안 배 아픈 환자들을 진료해온 의사로선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배 아픈 원인이나 기전(mechanism)에 따라 처방이 달라야 할 텐데 어떻게 배 아플 때 먹는약을 그렇게 손쉽게 고를 수 있을까?

배 아픈 환자를 치료하려면, 어떤 경우에는 위장운동을 촉진시켜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위장운동을 억제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변비를 해결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설사를 치료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복통을 유발하는 음식을 찾아 피하도록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치에 도움이 되는 식생활을 권해야 한다. 배 아픈 환자에게 처방을 내리는 일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하다. 가히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배가 오래 아프거나 심하게 아픈 환자들은 병원을 찾는다. 어떤 환자들은 진료실을 들어서면서부터 검사를 해달라고 한다. 위나 장에 위중한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니 서둘러 검사를 해달라고 조른다. ‘시시한검사 말고 CTMRI 같이 정밀한검사를 해달라고 한다. 비싸도 좋으니 아니 가능하면 비싼 검사를 해달라고 한다. 백화점 명품관을 찾은 눈 높은고객님 자세다. 환자의 불편과 걱정을 알고 있으니 그저 환자의 말을 가로 막을 수도 없고, 환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여 치료하기 위해서는 친절한의사가 되어 환자가 원하는 대로 값비싼 검시를 그냥 처방할 수도 없다. ‘배 아픈환자를 오래 진료한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참 난감하다.

배 아픈 원인을 구별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많은 원인들이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배를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환자의 병력을 자세하게 청취해야 한다. 이를 임상의학에서는 History Taking이라 한다. 특히, 배 아픈 시간, 위치, 패턴, 정도, 동반 증상, 악화 및 완화 요인, 등에 관한 정보를 면밀하게 확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많은 원인들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어떤 원인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시킬 수도 있고 어떤 원인일 가능성을 매우 높게 예측할 수도 있다. 임상의사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히스토리에 답이 있는것 같다.

환자의 히스토리를 분석하여 배 아픈 원인의 가능성을 좁힌 후에는 신체검사(Physical Examination)를 시행한다. 복부 진찰은 시진(inspection), 청진(Auscultation), 타진(Percussion), 그리고 촉진(Palpation) 순서로 실시한다. 배를 먼저 만지면 위장 운동이나 통증의 위치 혹은 정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통의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 시행하는 병력 청취와 신체검사에는 세부 기술이 있다. 많은 환자들이 이 과정을 시시한진찰이라 하지만, 병력 청취는 참 값싸고 유익한 기술이다. 이는 전문가의 영역이고 예술에 비견할 만한 귀중한 임상 능력에 속한다.

현대의학은 지속적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의 도움을 받아 진단의 정확성을 향상시켜왔다. 다양한 검사방법들이 개발되고 그 정밀도를 개선해왔다. 위장관 속을 직접 들여다보고 병변이 있으면 조직검사 등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까지 확인할 수 있으며 영상을 확보하여 시간에 따를 변화를 비교함으로써 좀 더 정밀한 진단은 물론 보다 효과적인 치료를 시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과정에도 숙련된 임상의사의 능력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환자들이 그토록 선호하는 비싸고 정확한검사인 CTMRI는 복통의 원인을 찾아내고 감별하는데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물론 뱃속에 있는(, 담도, 췌장, 등을 포함하여) 덩어리를 발견하는 데에는 효용가치가 있다. 하지만 위장관, 특히 병변이 많은 점막에 있는 미세한 병화를 찾아내는 데에는 맹점이 있다. 하기야 위장내시경 역시, 그동안 기술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진단과 치료에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소장내 병변의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식도--십이지장과 대장내시경의 경우에도, 점막의 염증, 혈관의 변형, 출혈, 궤양 그리고 종괴, 등을 발견하고 세부적으로 진단하는 데에는 크나큰 장점이 있지만, 위장 운동이나 소화액 분비 등의 기능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배 아픈 환자들의 검사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검사비나 환자의 요구보다 검사의 유용성과 한계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때론 친절한의사이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좋은의사가 되는 길이 참 녹록하지 않다.

배 아픈 환자를 만나게 되면 임상의사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감별해 나가야 한다. 제일 먼저, 병력 청취와 신체검사를 통해 그 원인이 기질적(Organic)인지 기능성(Functional)인지 구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배 아픈 환자를 많이 보아온 소화기내과 의사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상대적으로 많은 환자들이 기능성 원인으로 인해 배가 아픈 것같다. 따라서 많은 환자들의 경우에는 의사의 임상 능력과 간단한 검사만으로 배 아픈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 히스토리에서 답을 얻어 치료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불필요한 검사를 피하고 고통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단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환자와 의사 간 신뢰와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배 아픈 환자가 편해지는 길을 참 쉽게 찾을 수 있다.

배 아픈 원인을 히스토리에서 찾지 않고 검사에서 찾으려 하면 환자는 엉뚱한 진단으로 오랫동안 엉뚱한 약을 먹게 될 수도 있다. 오른쪽 다리가 가려운데 왼쪽 다리를 긁는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내시경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은 각종 위염 진단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다가다 배가 아팠던 원인이 그것 때문이라고 의사로부터 들었거나 스스로 그렇게 믿고 위염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정말로 위염 때문에 더부룩하고 배가 아픈 걸까? 위염을 치료하면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위내시경검사 후에 위염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대부분 만성 표재성 위염(Chronic superficial gastritis), 만성 위축성 위염(Chronic atrophic gastritis), 만성 미란성 위염(Chronic erosive gastritis), 장상피 화생(Intestinal metaplasia), 등 위점막에 만성 염증이 있다고 들었을 것이다. 이런 병변은 물론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병변이기도 하다. 살면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만성 위염은 어쩌면 노화현상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로 인해 배가 아픈 것은 아니다. 배 아픈 위염환자들의 주된 원인은 만성 위염이 아니라 기능장애, 즉 위장 운동장애 혹은 위산분비 이상으로 짐작된다. 이 경우 배 아픈 원인을 정확하게 감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위내시경검사 결과보다 환자의 히스토리와 임상의사의 능력이다.

물론 위염이나 위궤양으로 인해 배가 아플 수 있다. 급성으로 위염이 생겼을 때에는 이로 인해 배가 아플 수 있다. 진통소염제, 과음, 흡연, 커피, 등으로 인해 급성으로 위점막이 손상되어 염증이 생기고 피가 나면, 즉 급성 위점막 병변(Acute Gastric Mucosal Lesion; AGML)이 발생하면 배가 아플 수 있다. 위십이지장궤양 환자도 급성 병변이 생기면 속이 쓰리고 아프다. 또한 만성 궤양의 합병증으로 위장 운동에 장애가 발생하면 배가 아플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위 내시경 검사와 CT와 같은 영상검사가 진단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환자의 히스토리가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환자의 식습관, 흡연과 음주 이력과거 병력 그리고 약물 복용력, 등과 함께 증상의 양상을 면밀하게 분석하면, 많은 경우 급성 위염 등의 발생을 검사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다. 환자의 히스토리, 참 많은 걸 가르쳐준다.

 

오랫동안 배가 아팠지만 정확한 원인을 몰랐던 환자가 스스로 의사에게 답을 알려주었던 사례를 소개한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어깨에 가방을 매고 진료실로 들어온다. 키가 180cm는 족히 되어 보였지만 꽤 마른 체구에 옷이 헐렁하게 걸쳐 있다. 조심스레 의지에 앉아 내게 눈을 돌린다. 천천히. 고통을 호소하는 눈빛이 애절하다.

환자는 2주 전쯤에 두 차례 내게 다녀갔다. 간수치가 약간 높아져 날 찾았다. 난 그때 몇 가지 검사를 하고 간기능 이상소견에 대해 그 원인에 대해 그리고 간기능 개선을 위해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특히 간기능을 발 보존하기 위해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의 복용을 자제하라고 권해 주었다. 그리고는 2 개월 후에 다시 간기능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지난번 진료실을 방문했을 때에는 특별히 불편한 곳이 없다고 했다. 분명히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실제로 아무 증상이 없었을 수 있지만, 간기능이상이 무서워(?) 다른 불편은 사소하게 여겼을 수 있고, 낯선 의사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 일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땐 그랬다.

환자는 이번엔 배가 아파서 왔다고 했다. 간이 아니라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내가 간전문의인줄 알고 있지만 배가 아픈 걸 의논하러 내게 왔다고 했다환자가 다음 예약일보다 일찍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배가 아픈 문제로 간전문의인 내게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눈빛이 애절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난 환자에게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물었다. 환자는 배가 아프다 했다 그게 제일 힘들다 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지요?” “아 네….. 꽤 된 것 같아요. 아마 이삼 년은 되었을 걸요.” “그런데 진찰이나 검사를 받아보지 않았나요?” “여기저기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보았습니다. 두 달 전에는 위내시경검사도 받았는데 별 이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 아 그러셨군요. 여기 우리 병원에서 받으신 위내시경 검사 사진이 있는데 다 괜찮군요.”

배에서 어느 부위가 아프시죠? 한번 가리켜 보시겠습니까?” “여기가 제일 불편해요. 그리고 가끔씩 여기도요. ” 환자는 명치끝을 손바닥으로 둥글게 가리키다가 배꼽을 짚었다. “어느 정도로 불편한가요? 쌀쌀 아픈가요 자지러질 정도인가요 아니면 그 중간 어느 정도인가요?” “불편하긴 한데 뭐 못 참을 정도는 아닙니다.” “계속해서 비슷한 정도로 아픈가요 아니면 아프다 말다 하나요?” “아프다 괜찮다 하지 계속 아픈 건 아니예요.” “배가 아플 때 메스껍거나 토하지는 않나요?” “그러진 않았습니다, 선생님.” 배 아픈 것 말고 다른 불편은 없는지 환자에게 다시 물었다.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아직 하고픈 말이 많다는 표정이다. “늘 피곤하고 입맛도 없고 대변 보기도 힘들고…… 여기 명치가 더부룩하기도 하고요……”

나는 환자에게 배를 좀 보자고 했다. 환자가 진찰대에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워 무릎을 굽혔다. 환자에게 지금 아프냐고 물었다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배가 불러있지는 않았다. 배에서 소리가 크게 들리지도 않았다. 배꼽 주위를 돌아가며 가볍게 두드렸더니 좀 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많이 아픈 표정은 아니었다. 어느 부위가 제일 아프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할 뿐 제대로 가리키지 못했다.

환자는 분명 기능성 장애 때문에 배가 아픈 것이다. 환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로 인해 활동량이 적고 입맛을 잃어 식사량도 줄었으며 위장기능 장애도 생겼을 것이다. 그 결과 변비와 소화장애 그리고 간헐적 복통이 생겼을 것이다. 환자의 히스토리와 증상을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 기질적 장애로 인한 복통의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그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해도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고 여러 가지 약들을 사용했음에도 지속적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음은 이런 판단을 뒷받침해주는 히스토리이다.

환자에겐 위장약보다 상담과 정신 치료가 먼저다. 환자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면 입맛을 찾아 음식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고 활동량이 늘어 소화를 돕고 근육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변양이 늘고 위장 운동과 소화액 분비를 촉진함으로써 변비가 치료되고 복통도 사라질 것이다. ‘위장약없이 배 아픈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신체가 하나임을 새삼 깨닫는다. 정신신체의학 참 신통하다.

환자에게 나의 소견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환자도 나의 설명을 대부분 수긍했다. 벌써 배가 편해진 것 같다고 했다. 위장약은 가능한 한 피하기로 했다.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고 우동을 규칙적으로 하기로 했다.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와의 협진을 위해 클리닉을 방문하기로 했다.

 

환자는 입으로 얼굴로 몸으로 내게 답을 다 가르쳐 주었다. 환자의 히스토리에 답이 있었다. 물론 오랫동안 배 아픈 환자를 보아왔고 그동안 갈고 닦아온 나의 임상 능력이 일정부분 작동한 것도 사실이지만 환자가 나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진단에 이를 수 있도록 길을 안내했다. 환자의 히스토리를 알고 나니 진단과 치료가 참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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