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재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김희정 옮김 (부키, 2015)
(Being Mortal by Atual Gawande, Janklow&Nesbit Associates, 2014))
인도계 미국인으로 하버드 의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 의사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아툴 가완디는 이 책을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과 대학에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지만 죽음을 다룬 적은 거의 없었다. 첫 학기에 바짝 마른 해부용 사체를 접하기는 했지만, 그건 그저 인체 해부학을 배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전공 교재는 나이 들어 쇠약해지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 주는 것이 없었다. 그 과정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다루었다. 학생들 그리고 교수들이 알고 있던 의대 교육의 목표는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있을 뿐 꺼져 가는 생명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알려 주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대 학생들]는 지식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공감하고 동정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출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시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의대 학비를 내는 것은 인체가 돌아가는 과정과 병리의 복잡한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병을 멈추기 위해 지금까지 축적해 온 방대한 기술과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는 별로 달리 생각할 만한 게 없다고 믿었다. ... 그러나 몇 년 후 외과 전공의 훈련을 거쳐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한 나는 점점 쇠락해 가다가 죽음이라는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내게 그들을 도울 준비가 얼마나 안 되어 있는지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책은 바로 "죽음"이라는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그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문제의 본질을 대면하면서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하는 한 외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환자들과의 다양한 경험과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와 프로젝트 결과라는 공적 이야기들과 암에 걸려 고생하셨던 자신의 아버지와의 경험이라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란히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풀어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한국어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번역되어있고, 원 제목은 "Be Mortal," 즉 우리는 죽을 운명이다,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 개념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잘 살 것인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일견 정반대인 듯 보이는 '죽음'과 '삶'이 이렇게 혼용되는 이유는, 죽는 순간까지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결국은 '죽을 존재'임을 "용감하게"(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인정한다)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사를 해보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하라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환자들과 나누는 대화,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 그때 우선순위와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2010년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이루어진 연구의 결과를 증거로 제시한다. "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가 실험 의약품이었다면, FDA는 이 약을 승인했을 것입니다."
완화치료 전문가로 일하는 수전 블록은 이 어려운 대화를 하는 데도 절차와 방법이 있다고, 수술에 버금가는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그들을 압도하는 불안감에 잘 대처하도록 돕는 거예요. 죽음에 관한 불안감, 고통에 대한 불안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불안감, 돈에 대한 불안감 등 말이에요" 한 번의 대화로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의학으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분명히 이해하는 과정은 서서히 진행된다. 그러므로 말기 환자가 이 과정을 거치도록 돕는 방법은 딱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은 있다. 우선, 같이 앉아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앉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다. 그리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되기 전에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병의 예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앞으로 일어날 일 중 무엇이 염려스러운지, 기꺼이 희생할 용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건강이 더 악화되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상황이 되면 누구에게 그걸 대신하게 게 하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꼭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려운 질문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이 아닐까.
수전 자신이 수술 전날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감정을 적은 부분, 저자 자신이 사지마비가 오고 있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제시한 부분들은 이 어려운 대화를 나누는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의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을 뿐아니라, 질환 이야기가 줄 수 있는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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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날 저녁, 아버지와 딸은 친구와 가족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수전은 한동안 그렇게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돼서야 병원에서 나왔다. 베이 브리지를 반쯤 건널을 때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맙소사, 아버지가 원하는 게 무언지 난 전혀 모르잖아.' 아버지는 그녀를 건강 문제 의사 결정 대리인으로 지정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서로 피상적인 대화만 나누었을 뿐이었다. 수전은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병실로 돌아가는 게 정말 불편했어요" 그녀는 삶의 마지막 시점에 나눠야 할 대화에 관한 한 전문가였지만 그 사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게 정말 싫었어요."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목록에 있는 이야기들을 모두 꺼내 놓았다. "아버지, 제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아버지가 생명 유지를 위해 얼만큼 견뎌 낼 용의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상태면 사는 게 괴롭지 않을지 알아야만 해요." 그녀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글쎄, 코촐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미식축구 중계를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살고 싶구나. 그럴 수만 있다면 통증이 좀 심하더라도 이겨 낼 자신이 있어."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내 기억에 미식축구라고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이예요. ...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대화는 정말 중요한 것이 되었다. 수술 후 출혈이 일어났고 아버지를 살리려면 재수술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할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3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이미 결정해줬다는 걸 깨달았죠." 그녀는 의사에게 아버지가 살아난다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미식축구 중계를 볼 수 있는냐고 물었다. 대답은 '예스'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재수술하는 데 동의했다.
"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포기하고 말았을 거예요. 너무 끔찍할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고는 내내 후회했겠죠. 아버지를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요." "만약 내가 결정한 거라면 아버지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 드린 걸 엄청나게 자책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결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280-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