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의 공감진료 스토리』 정영화지음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의사를 만나고 왔다. 병원을 가기로 마음을 먹는데도 조금 미적대었고, 막상 아침에 병원으로 나서기 전에도 한 두 시간은 우물쭈물했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마음을 먹고, 진료를 보는 동안 속으로는 그냥 의사 선생님이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막상 그 말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섰는데도, 그래도 뭔가 아쉽다. 이런 아쉬운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이러저러한 자질들을 나열한다. 명석한 두뇌, 해박한 지식, 풍부한 임상 경험, 위기 상황에서의 재빠른 대처능력과 판단력 등이 우선 순위로 고려된다. 아픈 몸이 낫기를 바라면서 의사 선생님을 찾을 때에는 이런 자질들이 더 중요해보인다. 그런데 막상 진료실을 들어갔을 때 환자로서의 나는 의사선생님에게 이런 자질외의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다른 것이 따뜻한 마음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태도라고 말하는 김 박사님이 있다.
『김 박사의 공감진료 스토리』는 의사에게 있어서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태도가 의사가 지녀야 하는 전문적인 지식만큼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김 박사님의 목소리가 일반적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마음은 부차적인 자질이라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병원문을 나오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것은 실상 나의 병이 낫는 것과는 무관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런 나의 의문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김 박사님은 환자의 불안에 대해서도 읽어주고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김 박사님이 만난 환자는 나의 작은 질병보다 훨씬 무겁고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이지만 그래도 내가 겪는 불안과 공포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여겨져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병의 예후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임이 분명하다.
장기간 관리하는 질병이나 무거운 의학적 문제를 안고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몹시 불안하다. 스스로 주눅이 들어 행동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불합리한 의료체계에 불만을 가졌거나 의료진의 불친절에 화가 난 것이 아닐지라도, 환자들은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니 며칠 전에 검사를 위해 병원에 다녀간 이후로 내내 극도의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릴 수 있다. 자신의 질병 그 자체가 주는 공포 때문일 것이다. 진료실 문을 열고 의사와 마주한 후에도 좋은 검사 결과와 의사의 격려가 있기까지 환자는 안심할 수 없다. 김 박사는 환자가 겪는 불안과 공포를 잘 알고 있다. (164)
의사 선생님이 환자를 격려하고, 불안과 공포까지 읽어내어야 하는 자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전문직들은 어떤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누구나 평생 살면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변호사, 검사와 같은 법조계에 있는 사람부터, 화가나 작곡가와 같은 예술가들, 양자나 인공위성을 연구하는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훈련을 받고 오랜 시간 노력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전문 직종의 사람들도 만난다. 그러나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날 일은 많지 않을뿐더러, 만나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검사는 “이렇대,” “성악가 딸이 있는데 ...” 라는 식의 들은 이야기들로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구성한다. 그러니 그들에 대해 할 말도 그저 그런 정도로 제한된다.
그런데 병원에서의 경험에 대해 얘기할라치면 누구나 “나는 말이지”하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느 의사는 이렇더라, 어느 의사는 저렇더라 라는 감동적이거나 억울한 속마음들이 줄줄줄 흘러나온다. 어찌보면 전문가 그룹가운데 앞에서 열거한 어떤 전문직보다 더 혹독한 수련을 오랫동안 받고서 일반인들의 평가에 너무 자주, 고스란히 노출되는 그룹이 의사들이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 의사라는 직업은 본래 인간의 생로병사를 담당하는데, 인간은 아프고 다치면서 살아가니, 의사가 되면 모든 일반인과의 만남이 열려져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의사는 그 어떤 직업 그룹보다도 대인관계를 많이 하여야 하는 직업임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이런 부분은 의사가 되기로 맘먹는 사람에게도, 의사를 만나는 사람에게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서로의 돌봄과 보살핌 사이의 정서를 풀어내기가 녹록치 않다.
김 박사님은 녹록치 않은 둘 사이의 경험과 정서를 그만의 오랜 임상사례에서 찾아내고 진심어린 해소방안을 제시한다. 의사 입장에서의 공감진료와 환자 입장에서의 의사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진정으로 따뜻한 진료실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뜻한 진료실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하는 “의사와 환자 간의 믿음과 신뢰는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누가 먼저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134)”고도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 공감진료를 실천하기 위해 병원과 의료진이 먼저 나서자고 제안하고 싶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의료진과 병원을 신뢰하고 존중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앞서, 의료진이 먼저 그들로부터 신뢰받는 길을 찾아보자고 말하고 싶다(134)”고 제안한다.
김박사님의 제안은 일견 이상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김 박사님의 경험이 진실이고 김 박사님의 따뜻한 진료실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김박사님의 제안이 전체적인 의료계로 퍼져나가고 환자들이 의사들을 믿고 신뢰하는 일의 현실성이 온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박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 동안 의사들에게 가졌던 수많은 편견과 오해들이 반 이상은 해소되었고, “의사들은 늘 그래“라는 내 마음의 무의식적인 외침이 일정부분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울림이 조금씩 퍼져나간다면 한국병원의 진료실은 점점 더 온기가 가득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대형 병원의 임상의가 하는 세세한 일들이 세심하게 기술되어 있다. 내가 만나는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 밖의 병원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의대생들을 교육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교수와 연구자로서의 시간들, 환자와의 갈등에서 힘들어하고 고뇌하는 의사 선생님의 속앓는 모습, 현실적으로 치료가 힘든 병을 대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인간적인 장면들을 보게 되면 내가 만나는 의사 선생님이 김 박사님이 아닐까 하면서 더 신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에겐 생각만으로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설명하기 힘든 능력 있으니 신뢰와 믿음을 나부터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