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최 과장은 어젯밤 잠을 설쳤다. 일주일 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오늘 병원을 방문하기로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이지만 오늘은
특히 걱정이 크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기도 하였거니와, 지난 한 해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몸을 잘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술자리도 잦았고 외식을 자주하는 바람에 체중도 3키로나 늘었다. 쉽게 피곤하고 일의 능률도 예전만 못하다. 뭔가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이 간다. 큰 병만 아니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병원에서 담당의사와 마주 앉는다. 의사는 친절하게(?) 검사결과를 설명한다. 특히 빨간 글씨를 짚어가면서 최 과장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천천히 설명해 준다. “간수치가 좀 높습니다. 감마지티피가 특히 높고요…… 혈소판도 좀 ……” 목소리는 친절한데 내용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니 겁을 주는 듯하다. 코너에 몰린 생쥐가 된 심정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듯하다가도 이내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무언가 물어보아야 하는데 무얼 어디서부터 물어보아야 할지 가닥을 잡을 수 없다.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까지 받은 최 과장은 잠깐 동안 자괴감에 빠진다. 생명에 대해 꽤나 심도 있게 공부했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하찮은 숫자 몇 개에 이토록 힘을 뺏기다니 헛웃음부터 난다. 혼잣말이 저절로 나온다. “담당의사로부터 그 숫자의 의미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면,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숫자의 의미와 심각성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침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면 오늘 내가 설명을 들으면서 느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요즘은 특별한 질환이 없는 사람들도 병원을 찾아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다. 특별한 증상을 동반하지 않고도 질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신체 장기에 발생한 이상소견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건강검진에 반드시 포함되는 검사들이 몇 가지 있다. 그 검사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기능검사이다. 간기능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간기능 이상의 유무와 그 정도를 파악하여 간기능을 잘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건강검진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 간기능검사를 반드시 시행하는 것이다. 건강검진을 할 때 포함하는 간기능검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혈청 생화학검사이다. 그 이외에도 혈액검사, 소변검사, 영상검사, 등이 간기능 이상의 유무나 중증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성 간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간질환을 가질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잔여 간기능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더 이상의 간 손상을 예방하여 잔여 간기능을 잘 유지하는 일이 중요함은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간기능검사를 시행하게 되고, 그 결과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간과 간질환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임상분석을 거치게 되는 진단과정은 향후 환자의 치료에 반영되어 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에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된다.
일반적으로 질병의 진단에 사용되는 검사들은 각각 다양한 문제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현대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에 따라 각종 진단법들의 정확도가 한층 개선되어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에 신속하게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떤 검사도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어떤 검사를 시행하여 그 결과를 해석할 때 우리는 그 검사가 가진 만감도(Sensitivity)와 특이도(Specificity)를 고려해야 한다. 즉, 지금까지 알려진 검사법들 중 민감도와 특이도가 100%인 것은 없다. 어떤 검사도 질병을 잘못 진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검사를 시행하더라도, 검사의 결과를 이용하여 좀 더 정확한 진단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를 보완하려는 다양한 노력과 임상기술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신 의학기술이나 최첨단 장비들을 이용하는 검사들의 경우에도 이러한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을진대, 하물며 혈액, 소변, 대변, 등을 이용한 전통적인 간기능검사들은 오죽하랴! 그렇다. 이 책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간기능검사들은 오래된 검사법이고, 진단능률이 낮을 수도 있는 검사법이다. 예민도가 낮아 간기능 이상소견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특이도가 낮아 이상소견이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검사법의 의미를 피상적으로 이해하거나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데 미숙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에 지금부터 고찰하고자 하는 소위 ‘전통적’ 간기능검사법이 그렇게 부정확하고 무의미하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현대의학에서 이 검사를 임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에서 모든 대상자들에게 이 검사를 시행하고 있을까?
필자는 전공의 시절 원로 교수님의 의대 강의를 참관한 일이 있다. 간질환의 대가로 크게 존경을 받으시던 교수님이셨다. 교수님께서는 간과 간기능 그리고 간기능검사에 대해 강의하셨다. 전달할 내용이 넘쳤던 교수님의 강의는 조금씩 빨라졌다. 많은 학생들이 지쳐가고 지루해했지만 필자의 눈과 손은 바쁘기만 했다. 교수님께서는 수십 년 동안 쌓아오신 귀한 보물을 털어놓으셨다. 감추어오신 비밀의 열쇠를 제자들에게 내어주셨다. 필자가 환자를 보기 시작하며 풀지 못한 숙제를 당신께서 손수 풀어 보이셨다. 필자에게 그 시간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은사님! 당신 덕에 수십 년 동안 간질환 환자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당신의 가르침 덕에 사랑하는 제자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간질환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무력감이다. 수많은 간질환 환자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도움을 청하고 있건만, 필자에겐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이 없었다. 그들의 친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들을 도와줄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풀지 못한 숙제를 ‘전지전능하신’ 교수님께 떠넘기는 일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환자를 꼼꼼히 진찰하여도, 혈액검사, 소변검사, 대변검사 결과를 받아보아도, 도서관에 처박혀 밤을 지새도 해답을 얻기 어려웠다. “도대체, 교수님께서는 알고 계시고 나는 모르는 그것은 무엇인가? 교수님은 쓰실 수 있고 나는 못 쓰는 그 기술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강의실에서 답을 하셨다. 그런데, 예전 학생시절에는 왜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을까? 교수님께서 너무 많은 걸 가르쳐 주셔서 그랬을까? 다른 강의에 지쳐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을까? 그 말씀이 너무 예술적(?)이어서 감상만 했을까? 그 귀한 말씀을……
필자는 간과 간질환을 연구하는 학자, 간질환을 가르치는 교수 그리고 간질환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사로서 지난 40여 년을 살아왔다. 물론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언제나 최선의 진료와 교육을 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슷한 주제로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그리고 유사한 문제를 가진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오랫동안 간기능검사의 결과를 분석하고 그 의미에 대해 고민해왔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여건에서 동일한 자료를 통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이 정보를 간질환의 관리와 환자의 진료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것인지, 그리하여 종국에는 환자들에게 좀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수많은 의료진들, 학생들, 전공의와 전임의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들은 간기능검사에 대해 필자에게 많은 궁금증을 토로하였다. 단편적인 지식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검사법의 원리나 방법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또한, 검사 결과의 의미나 해석 그리고 임상적 적용법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도 드물지 않았다. 필자는 강의나 공개강좌 등에서 질문에 답하거나, 간기능검사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때때로 학회지나 교과서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상황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마음 한 켠에 불편한 느낌이 남아있음을 숨길 수 없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지면의 제한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게으름 때문에 불충분하고 불친절한 답을 드린 것이 매우 송구스럽다. 필자는 최근에 드디어 교수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시간을 한층 여유있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귀한 시간에 필자가 원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느꼈던 감동의 십 분의 일만이라도 원하는 분들께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 동안 모아두었던 자료를 정리하고 쌓였던 기억을 되짚었다.
이 책에서는 간기능, 간기능 이상을 나타내는 간질환, 간기능검사의 원리와 방법 그리고 간기능검사의 효율적인 임상적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필자가 의대 교수로서 연구하고 강의하고 경험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현장감 있게 기술하려고 한다. 가능한 한 필자가 겪었던 사례들을 많이 소개하고 그 의미와 임상 적용법에 대해 심도 있게 토의하고자 한다.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간기능검사의 임상적용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즉, 1)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검체를 이용한 간단한 검사방법, 2) 좀 더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해석방법, 3) 환자에게 최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임상적용법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책이 특히 의료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길 기대한다. 또한, 동료 의료인들과 필자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열린 마당이 되길 기원한다. 더불어, 각종 간질환을 가지고 계신 환자들이 간질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유용한 지식을 쌓고 친절한 임상지침을 제공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간, 간기능 혹은 간기능검사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불필요한 고통을 받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필자와 긴 시간 동안 질환과의 여정을 함께하신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당신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필자가 40여 년 동안 간질환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열정적으로 진료에 동참해준 동료, 후배 의료진께 고개를 숙인다. 당신들이 있어 세상이 따뜻합니다!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기술과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르쳐 주신 은사님들께 존경을 드린다. 영원히 당신들과 함께하겠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나누는데 인색했던 필자를 너그럽게 감싸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넘어졌을 땐 언제나 따뜻하게 손잡아주고, 길을 잃었을 땐 언제나 가장 밝은 빛이 되어준 아내, 이경란에게 이 책을 바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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